책 <뉴 맵> 핵심 내용
지정학은 각 국가 사이의 세력 균형 및 갈등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지금의 지정학적 변화는 주로 에너지와 관련된 미국의 위치 변화,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의 위상 그리고 기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치학에 따라 좌우된다.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상호 교류, 진보한 운송 수단, 자본과 기술에 의해 점점 더 하나로 연결됐고 이를 바탕으로 협력적인 세계 질서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화를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에너지 자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의 움직임은 2020년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역행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경험 중이며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에너지 및 국제관계 전문가로 알려진 데니얼 예긴의 <뉴 맵>은 에너지와 지정학적 문제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 중인 '새로운 지도'에 관한 책이다. 데니얼 예긴은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으면서 세계 지정학을 새롭게 정립한 미국의 셰일 혁명, 천연가스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에너지 야망, 석유자원의 고갈에 처한 중동 지역의 새로운 활로, 기후 변화로 인한 에너지 전환 시대에 처한 세계 각국의 대처 등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이슈들을 심도 있게 분석해 미래의 경제적 패권이 어떻게 형성될지를 예측하고 있다.
셰일 에너지 혁명 : 미국의 새로운 지도
1981년 미첼 에너지를 운영하고 있던 조지 미첼은 시카고가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10%를 책임지기로 계약했지만, 보유하고 있던 가스정들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해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회사 소속 지질학자 중 한 명이 쓴 학술지용 논문의 초고를 읽게 되었다. 지질학 및 석유공학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반대되는 가설 하나를 제안하는 논문이었는데, 거기에는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 있는 지하 깊은 곳의 암석층에서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추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실려 있었다. '셰일' 암석층이라 알려진 이 지층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수준만큼 뽑아내기란 어려울 거란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단단한 암석층을 뚫고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은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조지는 그것이 어쩌면 회사를 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천연가스를 추출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바로 '수압 파쇄법' 즉, 물과 모래 및 여러 화학물질 등이 뒤섞인 용액을 강한 압력으로 지층에서 쏘아 균열을 만들고 천연가스가 그 틈 사이로 빠져나오게 하는 기술이었다. 조지는 17년의 노력 끝에 자신의 직관과 확신이 옳았다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셰일가스의 개발이 경제성을 갖추려면 또 다른 기술 즉, 수평 굴착 기술이 필요했다. 그 이후, 대번 에너지의 최고 경영자 레리 니컬스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트레킹 기술과 수평 굴착 기술을 결합해 셰일 암석층에 있는 천연가스를 뽑아냈다. 훗날 니컬스는 이에 대해 "그 뒤로는 모든 게 역사가 되었다."라고 자평했다. 1990년대 셰일가스가 개발되기 전까지 천연가스가 미국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를 넘어선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셰일가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천연가스는 가격 측면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셰일 가스와 셰일 오일로 인한 에너지 혁명은 세계 석유시장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에너지 안보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수십 년 동안 석유시장을 지배해 왔던 OPEC과 비 OPEC 국가들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사라지고, 새로운 개념과 구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에너지 안보의 부각
러시아는 유럽이 소비하는 전체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럽에서 일어나는 지정학적 갈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고 경제 발전을 뒷받침한 건 바로 석유와 천연가스였다. 1991년 말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국가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 문제로 러시아와 갈등하게 된다. 천연가스와 가스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하나로 이어줌과 동시에 적대시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다.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의 주요 시장인 만큼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의 안전은 매우 중요하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양국은 천연가스 가격 및 우크라이나가 받아가는 관세 등과 관련해 악감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장미혁명'을 통해 러시아를 반대하는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다. 새로 들어선 우크라이나의 정부는 천연가스 가격을 두고 러시아와 여러 차례 치열한 재협상을 했다. 협상이 타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을 2006년과 2009년에 걸쳐 두 차례 중단했다. 서유럽 측은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세력을 과시한다고 비난했다. 2009년의 중단 사태는 2주일 넘게 계속됐지만 예상했던 만큼 큰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서유럽 국가들이 그간 비축했던 천연가스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상황들로 인해 러시아와 서유럽 모두 에너지 안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중국의 에너지 안보와 바닷길
2009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대국으로 올라섰으며,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사용 중인 에너지 자원의 85%는 화석 연료이다. 중국의 석탄 수입량은 상황에 따라 크게 변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중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그에 반해 석유와 천연가스는 그렇지 못하기에 중국 정부는 에너지의 지정학적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 1959년 만주 다칭에서 대규모 유전 지대가 발견되면서 석유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대규모 경제 성장과 함께 수요가 생산을 크게 앞지르면서, 1993년부터는 석유 수입국이 되었고 2020년에는 전체 석유 수요의 75%를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이 되었다. 전 세계 유조선의 절반가량은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미국이 중국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의 석유 수입 항로를 가로막는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중국이 남해구단선 지도를 전략적 근거로 사용하면서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바닷길은 단지 석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도 오가는 통로가 됐다.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 및 어업권을 둘러싼 모든 갈등은 중국의 에너지 안보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중국의 에너지 안보와 관련해 정말로 중요한 건 바다 깊은 곳 어디에 있을지 모를 자원이 아니라 항로 그 자체와 항로를 오가는 화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에너지 행보
사우디아라비아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석유가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국가인 데다가 계속해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석유를 생산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석유에서 벗어나고 있는 세상이 다가올 가능성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동 지역의 석유가 내세우는 낮은 생산 비용도 미국 셰일 오일 같은 새로운 경쟁자들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1971년 UAE의 설립을 주도한 알 나흐얀 국왕은 언제까지나 석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 국부 펀드인 '아부다비 투자위원회'를 설립했다. 2004년 왕세자로 책봉된 무함마드 빈 자이드는 50년 후에는 석유가 바닥날지 모른다며 2,300억 달러 규모의 두 번째 국부펀드 '무바달라'를 설립해 국내외 건설 및 투자 전문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무바달라에서 운영하는 마스다르는 현재 태양광 및 풍력 전문 개발 사업으로 유명한 동시에 에너지 산업의 기술과 혁신에서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2019년 사우디의 아람코는 대규모 국영 석유화학 기업인 사빅을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채권 발행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사우디 아람코의 기업 공개 및 신규 상장이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석유 및 금융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잠재적 기업 가치 2조 달러와 민영화 가능성이 가진 잠재력은 역사상 그 어떤 기업 공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전 세계 석유산업의 역학관계를 단숨에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형학의 뉴 맵
에너지와 지정학의 기후 변화가 더해지면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더믹과 양적 완화 덕분에 시중에 엄청나게 풀린 자금이 2차 전지와 풍력, 태양광, 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를 가장 주목받는 투자 섹터로 만들었다. 현재 이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5장. 또 다른 지도들'과 '6장. 기후 지도'에서 신생에너지 개발에 도전장을 낸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등을 폭넓게 분석하면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에너지와 지영학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낼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무엇을 활용해 이동하느냐에 따라 일자리와 돈의 흐름, 국가 간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선두를 노리는 한국으로서는 특히 주목해야 할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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