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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과학은 상상력이다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책 리뷰

by 노후니 2023. 3. 1.

&lt;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gt; 책 표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상상력은 과학의 힘이다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당신은 지구 전체를 실제로 본 적이 있나?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지구이고, 또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대륙과 바다를 봤고, 인공위성이 찍은 지구 사진을 봤으니 "지구를 보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나아가서 우주, 시간, 공간의 실체를 본 적이 있는가? 천체 망원경을 통해, 시계나 건축물을 통해 보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다. 태양의 궤도와 달의 행로를 어떤 힘이 이끄는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보지 않고도 이것들을 '안다.'라고 말한다. 지구와 우주가 무엇이며, 시간과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자연법칙도 정의하고 또 계산해 낸다. 어떻게 가능할까? 과학 때문이다. 과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설명하려 했던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통해 발전해 왔다. 상상력은 과학자의 토양이자 과학의 기반이다.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설명 가능한 것'들로 바꿔 놓았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과학의 힘을 이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살펴 보도록 하자.

과학의 탄생

플라톤의 <국가> 7권에 나오는 어두운 동굴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는 무지와 편견에 대한 유명한 비유이다. 사람들은 앞에 있는 동굴 벽을 향해 묶여 있다. 뒤쪽에서 횃불을 비추는데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밖에 나가서 햇빛과 넓은 세계를 돌아보고 온다. 그는 동굴 안 사람들에게 그 놀라운 광경을 설명한다. 동굴 안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무지와 편견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사실에 대한 혼란이자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반복해서 시도한다. 세계를 탐구하고 다시 그려내면서 점점 더 나은 그림을 보여준다. 세계를 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사고방식의 점진적인 향상을 가져온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말하는 '과학의 힘'이다. 저자 카를로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의 힘은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실재의 새로운 영역을 밝혀내고, 세계에 관한 새롭고 더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예지적 능력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험은 축적된 지식 전체에 의존하지만 그 모험의 정수는 변화입니다. 더 멀리 보세요. 세계는 끝이 없고 무지개빛입니다. 우리는 가서 보기를 원한다."

까를로는 이러한 모험에서 나오는 놀라움을 전하길 원한다. 그 모험의 정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2600년 전의 밀레투스라는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과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학 역사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밀레투스는 부유하고 번창한 그리스 도시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황금기 이전, 그리스 세계의 중심이었다. 몇몇 사상가들은 인류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였다.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또 어떤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지, 왜 다양한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지와 같은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서 밀레투스 학파가 조직이 된다. 이때 사상가 데모크리토스가 출연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과학적 사고의 첫새벽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세계를 단순화했다. 그가 생각한 세계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주 전체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닙니다. 공간은 한계가 없습니다. 위도 아래도 없습니다. 중심도 그 경계도 없습니다. 원자들은 모양 이외에는 그 어떤 성질도 갖지 않습니다. 무게도 색도 맛도 없습니다. 원자는 나눌 수도 없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이 세계를 이루는 기본 구성이고 실제라고 설명한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원자의 운동과 조합이 무작위로 만나서 우연히 만들어낸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보이는 세계는 실재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2600년 전부터 인류 역사를 관통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성장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에 대한 정의는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불리는 리처드 파인먼에게 이어진다. 파인먼은 물리학 입문 강의 책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것은 원자로,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2600년 전 데모크리토스는 현대 물리학의 도움 없이도 이미 원자로 구성된 세계를 정의하였다. 이처럼 고대 과학의 원천은 천재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계보를 잇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연구', 피타고라스의 '수의 중요성 연구', 플라톤의 '수를 통한 세계 이해',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저술로 이어졌다. 이후 천 년이 더 흐르면 우리가 잘 아는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천문학 연구에 천착한 코페르니쿠스, 태양과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인 법칙으로 증명한 요하네스 케플러, 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갈릴레오는 물체의 움직임에 관한 수학적 법칙을 실험으로 입증해 낸다. 물체가 낙하할 때는 9.8m/s²의 가속도가 붙는다는 낙하 법칙이다. 그 이후에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을 상상한 아이작 뉴턴이 출연했다. 뉴턴은 물체의 움직임에 관한 수학적 법칙을 넘어서 자연 상태에도 수학적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를 가설로 해서 실험과 계산을 하던 중 지구를 도는 달이 지구 중심을 향하는 가속도가 9.8m/s² 임을 증명한다. 9.8m/s²이라고? 갈릴레오가 발견한 물체의 낙하 가속도와 일치한다! 물체가 지상에서 바닥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힘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돌도록 만드는 힘이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주의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증거이며, 보편적 힘인 중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19세기 이래 근대 세계의 모든 기술은 뉴턴의 공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후 뉴턴의 발견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은 다음 과학자가 이어받았다. 패러데이는 두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을 전달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증명한다. 바로 전기력과 자기력이다. 이어서 맥스웰은 물체 사이의 거대한 거미줄 같은 역선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패러데이의 '상상의 선'을 방정식으로 기술해 낸다. 그리고, 드디어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 중력장이 곧 공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것은 공간 자체가 물결치고, 유동하고, 휘고, 비틀리는 실재 하는 존재자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20세기 위대한 과학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깊게 해 주었다.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두 개의 이론 덕분이다. 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에 관하여, 양자이론은 물질과 에너지에 관하여 다르게 생각하도록 안내한다. 기존의 관습적 사고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두 이론은 이 책의 저자 카를로가 연구하는 현대 양자 중력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양자역학을 넘어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세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세계이다. 양자역학 이론의 발전을 주도한 닐스 보어, 양자역학 방정식을 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폴 디렉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드디어 제2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기존의 양자 역학을 뛰어넘어서 루프 중력 양자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루프양자역학, 이는 이 세계에서 시공간과 입자 장 등의 존재 문제를 '공변양자장'으로 설명한다.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디지털 비트처럼 더는 쪼개지지 않는 공간 원자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고리의 일종인 루프를 통해 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배경은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물리적 세계를 재정리한 양자역학이 그 배경이다. 하지만 이 두 이론에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까를로의 루프 양자 역학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이다. 2600년 전 데모크리토스로부터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현대 물리학에 다다른 과학의 세계는 이처럼 상상과 검증이 결합하면서 발전해 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독서 후기

"보이는 세상은 실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책은 인류의 상상력이 가진 힘을 역설한다. 상상력은 실재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힘이다. 과학은 이와 같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간다. 또한 과학은 상상력을 기록 및 정의하 힘이며 숫자로 증명해 내는 힘이다. 카를로의 이 책은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쓴 물리학 안내서로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상상력의 대가들이 무수히 반복되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우주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내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실재적 본질을 발견해 낸 과정을 스토리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편협한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드넓은 세계에 들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상상력이 가진 힘을 다시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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