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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철학으로 승리하라!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리뷰

by 노후니 2023. 2. 28.

&lt;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gt; 책 표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시카고 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친스는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게 되면 문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통렬한 지적이다. 최근 철학을 중심으로 한 교양 과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상에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미치게 될 엘리트를 교육하는 데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엘리트 경영자 교육 기관으로 저명한 미국의 아스펜 연구소는 세계 최고 고액 연봉자인 글로벌 기업 간부 후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루크, 루소, 마르크스 등의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친다. 철학이 위기 돌파와 미래 경영의 핵심 열쇠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철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철학을 배워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는다는 점이다. 야마구치 슈는 세계 1위의 경영인사 컨설팅 기업인 콘페리 헤이 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다. 그가 쓴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고리타분한 기존 철학사와는 아주 다른 면모를 보인다. 학문적 중요성이 아닌 현실의 쓸모에 기초해 책을 구성하였다. 책 속 핵심 개념 50가지는 조직과 인재에 관한 솔루션과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성을 도출하기 위해 선별되었다. 전 세계 2천여 명의 CEO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인문학 수업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유이다.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무기 - 'How'의 철학

모든 철학자의 생각은 두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물음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물음이다. 이 책은 How의 물음에 집중한다. What의 물음에 대한 과거 철학자들의 답변들은 현대인들이 보면 잘못되었거나 옳지만 진부한 경우가 많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이 대지를 받치고 있다는 당시의 정설에 맞서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의 주장은 당시로는 놀라운 것이었겠지만 현대인에게는 식상하게 느껴진다. 학문적으로는 배울 점이 있지만 현대인들의 삶 개선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 개념 50개는 현대인의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무기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반인도 철학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갖게 만든다. 니체의 르상티망,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질 들뢰즈의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에드문트 후설의 에포케, 스키너의 대가 등 이 책에 소개된 50개의 개념은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무기로 How의 철학이 갖는 매력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무기가 되는 철학 개념 #1 - 니체의 '르상티망'

일반적으로 르상티망(Ressentiment)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설명된다. 쉽게 말하면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 시기심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폭넓은 개념이다. 이솝 우화에는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한 여우가 그것을 따먹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노를 '저 포도는 엄청 쉴 거야.'라는 생각으로 전도하고 해소하는 행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전형적 반응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되고 또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한다. 주위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가졌는데 자신만 없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자신은 명품 가방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명품 가방을 사서 마음에 가득했던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열등감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가치를 역전시키려는 반응도 있다. "나는 파스타 전문점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필요가 없어. 파스타 전문점으로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고급 프렌치레스토랑에 가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전형적인 가치 판단을 전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르상티망을 품은 사람에게 가치의 역전을 제한하는 킬러 콘셉트(Killer Concept)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치 판단의 역전이 르상티망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문제 의식에 뿌리를 둔 것인지 잘 판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가 되는 철학 개념 #2 - 멜빈 러너의 '공정한 세상 가설'

힘든 고난 속에서도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은 공정해야 하며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것을 사회 심리학에서는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이 가설을 처음 제창한 사람은 정의에 관한 심리학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멜빈 러너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을 믿고 노력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기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관을 고집스럽게 주장한다면 오히려 폐해가 클 수도 있다.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말콤 블레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제창한 법칙이다. 핵심 내용은 큰 성공을 이룬 음악가나 스포츠 선수 모두 '1만 시간'이라는 긴 기간을 연습과 훈련에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만 시간의 법칙은 실증 연구로 최근 부정되고 있다. 섣불리 이 사고에 사로잡혔다가는 승산 없는 일로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 또한 이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잘못된 반대의 추정을 한다. 즉 실패한 사람은 모두 노력을 안 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소위 '피해자 비난'이라고 부르는 편견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사회에 대한 원망은 사회적 테러를 일으키는 심리 요인이기도 하다. 세상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그러한 인식을 분명히 해야만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무기가 되는 철학 개념 #3 - 질 들뢰즈의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파라노이아(Paranoia)'와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는 프랑스 현대철학자 질 들레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에 사용된 용어이다. 파라노이아는 '편집증'을, 스키조프레니아는 '분열증'을 뜻하는 심리 용어이다. 질 들뢰즈는 이 두 용어를 통해 인간 유형을 구분하였다.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착하는 유형이다. 반면,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직감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 즉 직업에 얽매이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취약함을 보인다. 그들은 '일관성 있는, 흔들리지 않는, 외길 십년'과 같은 말들을 중요시한다.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도망치는 사람들'이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 파라노이아형 인간들처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편집증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위험할 수 있다. 지금 인기를 누리는 직종 대부분은 20년 후에는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거듭해 가는 삶을 추구한다. 파라노이아에 비해 스키조프레니아가 경박하고 나약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대에는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파라노이아 유형을 지향하고, 용기와 강인함을 지닌 사람만이 스키조프레니아 유형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독서 후기 :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철학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소개된 철학 사상에 관한 용어는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눈앞에서 일어난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위에서 소개한 개념 외에도 자신이 확실히 안다고 자부하는 생각을 잠시 보류하는 '에포케(Epoche)', 무엇에 도움이 될지 잘 모르지만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브리콜라주(Bricolage)', 신념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신념을 결정한다는 '인지 부조화',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 등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되는 50개의 개념을 How의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철학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개념의 폭이 넓은 사람이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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