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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야기의 탄생> 리뷰 - 인간은 이야기로 진화했다!

by 노후니 2023. 3. 6.

&lt;이야기의 탄생&gt; 책 표지
<이야기의 탄생> 윌 스토 지음

끌리는 이야기의 특징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삶은 곧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는 힘이 있다. 이야기 중에서도 끌리는 이야기가 있다. 대중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통해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함께 흥분하게도 하며, 감정적으로 혹독한 전쟁에 뛰어들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직면하는 삶의 냉혹한 고통을 이야기로 극복해 낸다. 이런 이야기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뇌가 좋아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가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를 뇌 과학과 심리학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 윌 스토는 기자이자 소설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론가들의 서사에 대한 개념이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뇌와 마음에 관해 연구한 내용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저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소설, 고전, 명작, 영화, 드라마 등을 인용하며 왜 우리가 이야기에 그토록 매혹되는지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글쓰기를 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하며, 글쓰기에 관심이 없어도 이야기에 담긴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야기의 시작점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찰스는 1862년에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태어나 하숙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메리와 아버지 토머스 사이에서 자랐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어떤가? 그런데, 이 같은 방식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우리 뇌는 더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원하며 다음 두 가지 특징이 담긴 이야기에 빠져든다.
첫째,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을 담은 이야기이다. 변화는 우리 뇌가 끝없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현상으로 작가들은 주로 첫 문장에 변화의 결정적 순간을 담아낸다. "아빠는 도끼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 건가요?"라고 시작하는 샬롯의 <거미줄>이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처럼 말이다. 첫 문장을 통해 구체적인 변화의 순간을 전달하고, 호기심을 끌어내며, 골치 아픈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암시를 던지는 것이다. 변화의 순간에 우리는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에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둘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작가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를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보여주며 갈증을 자극한다.
미국인 1,500만 명이 시청한 TV 시리즈 <로스트>에는 이름 모를 섬에서 수수께기의 북극곰과 정체 모를 원시의 존재들, 알 수 없는 검은 연기, 의문의 프랑스인 여자, 땅바닥으로 난 기묘한 문이 등장한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시청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알 수 없는 단서를 쫓으며 허구 속 인물들과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수수께끼는 상상력의 촉매'라는 이야기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야기와 뇌과학의 연관성

그런데 이런 특징을 갖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뇌 과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걸까? 조지프 캠펠의 다섯 단계 '영웅 신화'는 스토리텔링의 고전적 접근법으로 알려져 있다. 비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모험으로의 첫 부름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 조력자를 만나고, 시련을 극복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서사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흐름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완벽한 플롯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인간의 뇌는 '언제, 어떤 상황에 더 깊이 반응하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니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과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뇌에 관심을 끌고 유지하게 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작가가 다양한 목적으로 진화해온 도덕적 분노, 예기치 못한 변화, 지위 게임, 특수성, 호기심 같은 신경계의 수많은 기제를 충분히 이해하면 깊이 있고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웅 신화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 구조의 원칙이었다면, 뇌 과학적 접근은 이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원칙이 왜 원칙인지 이해하면 그 원칙을 성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플롯보다 '인물'이다. 뇌과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연구한 저자는 플롯에 관한 관심을 인물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그게 표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인물에 더 집중한다." 저자는 위와 같이 말하며, 사람들은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이 어떻더라.'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강렬하고 심오하고 독창적인 플롯은 바로 인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인물'의 역할

탁월한 인물을 창조하려면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아봐야 한다. 이야기 속 인물은 현실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화, 사회, 경제 등의 환경 속에서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가진 결함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인물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며 그 성격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 보이는지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뇌가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이 결함을 가지고 있을 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그 인물의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가 관찰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구축된 인물 모형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실제라 믿으며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 타인을 바라본다. 자신의 시선에 편견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일어나고 사건이 발생한다. 각자가 가진 인물에 관한 잘못된 이해와 믿음이 실제 현실과 부딪히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 속 인물은 외부 세계와도 갈등을 겪지만 결국 근본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 찰슨은 신문 발행인 경력을 통해 뉴욕 주지사에 입후보하며, 자신을 이타적이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후보라고 홍보한다. 하지만 선거 패배 이후, 자신의 친구로부터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관심 없는 사람이라며 숨겨진 오만함을 지적받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서 주인공 찰스는 나는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에 닿지 못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의 답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저자는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설명한다.

"핵심은 신경망에 있다. 이야기는 뇌의 여러 진화 체계에 작용하는데, 유능한 작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런 신경망을 모두 발화시킨다. 여기에서는 도덕적 격분으로 떨리는 음을 조금 내고, 저기에서는 지위 게임의 팡파르를 울리고, 부족을 식벽하는 방울 소리와, 우르릉거리며 위협적인 적대자의 소리를 내고, 위트의 나팔을 불고,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고, 부당한 골칫거리를 크레센도로 울리고, 씨실과 날실의 허밍을 만들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극적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한 마디로 독자의 뇌를 사로잡고 조작할 수 있는 악기를 총동원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탄생> 독서 후기

이야기는 우리의 신경망을 사로잡아 현실과 다른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미국의 경우 18세기에는 이야기가 다른 계급이나, 다른 국가나, 다른 성별의 구성원에게 공감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파말라>, <클라리사 할로> 같은 대중소설이 계급과 성별과 국경을 뛰어넘어 공감하게 되고, 19세기에 이르러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노예 해방론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게 된다. 이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남북전쟁 발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뇌 과학과 심리학으로 증명하는 이야기의 힘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는 인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결국, 모두 죽는다. 우리는 이런 진실을 알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살아간다."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뇌는 희망에 찬 목표로 삶을 가득 채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만들어 우리가 삶의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지 않게 해 준다라는 반전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야기가 우리 뇌를 자극해서 우리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삶의 혹독한 진실을 외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탄생 그리고 과학과의 연관성을 통해 우리 삶이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가치를 재발견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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